06. 夜行 -야행-
命運@_20191001
허면 내가 한 번 슬쩍 흘릴 테니 부인회에서 남편이나 남자 형제를 동반할 수 있는 날을 만들어 줘. 한명운이의 말재간이 이럴 때에 쓰여야 하지 않겠어? 게다가 나는 마작을 한 적이 없어 많이 잃을 테니 화연이의 면도 살려줄 수 있고, 분위기도 띄울 수 있을 거야. 대신, 그 전까지 마작을 알려줘야 해.
花然@_____justdream
(당신의 말에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발을 딛어 당신의 볼에 연신 입을 잔뜩 맞추는 것이다. 이런류의 인간관계에는 늘 서툴어서 이도저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어느 무리에도 끼지 못하고 외딴 섬처럼 남게되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당신이 나서준다니 기분이 뛸듯이 좋았다.
타지에서 고국의 사람들과 오래 알고지내기는 힘든 일이며 그 모임의 성격도 크게 색을 타지 않아 편안히 즐길수 있는 것은 더더욱이 힘든 일이었으니 당신의 도움을 마다할 이유가 없던 것이었다.)
마작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당신이라면 금새 배워선 그곳의 사람들의 내깃돈을 다 쓸어와버릴 것 같은데요? 일단 마작은 용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용을 완성시키는것을 화료한다고 해요. 그리고는 포커랑 비슷하게 짝패를 맞추면 되는데...
(제가 좋아하는 놀이인 마작에 당신이 관심을 가지는게 기뻤다. 물론 당신이라면 언제고 저를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여 주겠지만 이번은 다른 때와 다르게 단순히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색다른 데이트같아 좋았다.
그래 백화점을 구경하며 커피숍에서 하릴없이 사람들만을 구경하는 것도 이제 질려가던 차에 이런 색다른 데이트라니. 게다가 자신이 당신에게 무얼 가르쳐준다는 것도 꽤 즐거웠다. 당신이 배우기 시작했을때 장난을 조금 쳐서부러 지게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저희들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이니 소원을 말해보는 내기를 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있자니 표부인이며, 그 이복 오라비가 알게 무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다회를 갖자고 하고 싶은걸요! 너무 설레어서 발이 땅을 딛지 않고 날아다니는 것만 같아요. 후후. 즐거워라!
命運@_20191001
하지만 내일 당장 다회를 열면 화연이에게 마작을 배울 시간이 없는데. 그래? 용을 만들면 되는군.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인간들은 뱀이 천 년을 살아 용이나 이무기 중 하나가 된다고들 말하지 않던가. 그러니 천 년이 넘도록 뱀의 주인으로 있는 제게 용이란 존재는 영 꺼림칙한 존재인 것이다. 하나 화연이 좋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게다가 아내에게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도 색다른 일이었다. 아내가 무언가를 조잘거리며 제게 알려줄 때면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배우곤 하였는데, 작금의 상황이 그것과 딱 들어맞았다. 용이면 어떻고 지렁이면 어떻겠는가. 아내가 이토록 좋아 방방 뛰는데.
피식 웃으며 화연을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이며 정원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추워 이제 들어가지, 하고는 화연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식탁에 먼저 가 있어. 담배만 한 대 피우고 들어갈 테니까.
(밖에서 피우든 안에서 피우든 작금의 시대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이보다 더 먼 미래가 온다면 안에서 피우는 담배는 허용되지 않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먼 미래의 이야기다. 그래도 화연의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아내의 몸은 완벽하게 활발했으나 부인회인지 뭔지에서도 다른 이들의 아편이며 담배 냄새를 맡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제가 그걸 더해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화연을 세워두고자 하는 것은 더욱 원치 않았다.
서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주된 습관이었지만, 지금은 우연찮게 바깥이니까 한 대 피우고 들어가도 되겠지. 핑, 하고 라이터가 열리며 불꽃이 쏟아졌다. 가만히 불꽃을 바라보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배가 고팠다. 불행에 굶주렸다.)
花然@_____justdream
나는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춥다며 기어이 실내로 저를 들이는 제 부군을 누군가는 유난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까지도 저는 당연하였고 제 어깨에 걸친 당신의 겉옷이 당신의 품만큼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이러지 않아도 여느 모임을 가든 담배며 아편이며 지독하게 피워대는 통에 익숙치 않은 사람인 것도 아닌데도 과보호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보호가 늘 좋으니 이렇게 괜찮다며 겸양을 떨며 보호를 받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당신이 곧 들어올테니 바로 먹을수 있게 해달라고 말을 하곤 당신이 앉은 자리에 마주 앉아 그 곳에 앉을 당신을 생각한다. 고작 담배 한개피의 시간인데도 당신은 당신과의 시간을 기대하게한다.
당신의 웃음이 즐겁고 당신이 기껍다면 저는 영원히 멈출줄 모르는 오르골 인형이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당신은 박제된 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 원하지 않을테요, 말릴테지만.
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자니 딤섬이 다시금 떠올랐다. 표부인이 사주었던 딤섬이 꽤 맛있었지, 딤섬을 빚는 것도 재미있는데 재료를 사서 당신에게 딤섬을 빚어주고 마작을 알려주며 내일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딤섬 속 재료를 무엇으로 할지 짧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命運@_20191001
(담배 하나를 모두 피운 뒤에는 잠시 서서 냄새를 어느 정도 빼고 들어왔다. 다이닝 룸으로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고, 입을 한 번 헹군 뒤에 식탁으로 향했다.
식탁에 올라온 것은 북경식 오리구이와 떡 쌈, 그리고 채소들이었다. 아마 주인 내외가 외출을 한 사이에 주방에서는 단단히 준비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지. 쌈을 하나 싸서 일단 화연의 입에 하나를 넣어 주었다.
양배추며 피망이며 하는 채소들을 생으로 먹는 것은 사치였다. 근래의 인간들은 돌이 섞인 쌀을 받고 분노해 난을 일으킨 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은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화연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되었고, 다행히도 맛있게 먹일 수 있을 만큼의 힘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제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화연이 오물오물 씹어 삼키는 것을 구경하다가 그녀가 음식물을 삼킬 때에 맞추어 다시 한번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인간의 음식은 호불호가 없었으며, 먹어도 배를 불려주진 않았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기다리고 있던 시종 하나를 불러 데운 술을 가지고 오라고 일렀다. 자신이 없이 홀로 잘 화연이 취해 깊게 잠들어 제가 없어도 깨지 않기를 바랐다.)
밤에는 잠시 외출을 해야겠어. 걱정하지 마. 날이 새기 전에 들어올 테니까. 내 아내가 홀로 아침을 맞이하는 일은 없을 거야.
花然@_____justdream
(입이 짧은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제 입에 싸서 넣어주는 쌈은 끝없이 들어갈 것만 같았다. 당신은 먹지도 않고 제 입에만 넣어주는게 어떻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득한 식감이 좋았다.
입 안에 퍼지는 야채의 싱그러움이 좋았다. 물론 지금의 정원에는 온통 프리지아며 꽃들뿐이라 야채를 굳이굳이 키워보겠다면 사용인들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리지도 못하고 제 남편만을 말려달라며 볼 것이다.
그것도 꽤 즐거울텐데. 당신의 말에 술기운에 조금 부루퉁하고 솔직한 표정이 됐다.)
경성의 야심한 밤거리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구 그래요. 당신을 잃으면 나는 삶을 사는 이유도 잃어버리고 말텐데.
(이런 걱정은 사실은 사치라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제 부군이 위험한 시간에 길을 나선다면 투기하지않고 걱정을 하는게 양처의 덕목 아닐까. 술이 들어가면 이런 시시덕한 농담이 나오곤 하니까.)
그러면은, 아침에 일어나서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이야기도 해주고... 같이 아침도 먹어요.
(돌아오리다 약속하여도 잠들때 당신이 없는 것이 서운한 것은 어쩔수 없다. 내일은 잠에서 깨면 악몽을 꾸었다 거짓말로 투정을 부려야지. 그리고 같이 딤섬을 빚자고 해야겠다.)
命運@_20191001
내가 어떻게 화연이를 두고 변을 당하겠어. 잠시 마실을 다녀오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
(화연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흥얼거리듯 말했다. 화연의 투정은 귀여웠다. 보통 인간 사내들이 아내의 투정을 귀여워하듯, 뱀도 제 반려의 투정을 무척 귀엽게 생각했다. 살뜰히 아끼고 사랑스럽게 품에 안고 싶었다. 그것이 화연이 뱀에게 준 세상이었다.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화연을 장식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제게 여유가 필요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죽음과 비극을 먹지 않으면 일종의 허기를 느끼기 마련이었다. 이 허기가 해소된다면 분명히 아내를 더욱 사랑할 수 있으리라.)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야지. 걱정하지 마. 화연이가 잠드는 것까지는 보고 갈 거야. 다만, 중간에 깨어 내가 없다고 놀랄까 봐 걱정이 되니까.
(내일이면 또 어떤 깜찍한 투정을 부리려나. 화연은 애교가 많았고 질투도 깊었다. 그 질투를 흡족하게 여기는 것이 뱀의 몫이었다. 뱀은 화연이 무엇을 종알거려도 전부 들어줄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는데, 같이 아침을 먹자는 그 깜찍한 말을 어떻게 거부하겠는가. 이쯤에서 끊어내는 게 좋겠군. 적당히 마지막 쌈을 싸 입에 넣어 줬다. 여기서 더 먹였다간 분명히 탈이 날 것이다.)
여기까지 먹지. 더 먹으면 배가 아플 거야.
花然@_____justdream
원래 이렇게 많이 먹지 못하는데 당신이 입에 넣어주는것은 자꾸 끊임없이 먹게 돼요. 많이 안먹어서 마른게 아니냐는 부인들이 이렇게 많이 먹는걸 보면 분명 놀랄걸요.
(그네들의 말 뜻은 결국 질투였지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입이 짧은 것은 자명했으나 당신이 제 입에 넣어주는 음식은 달았으며 질리지 않았다.
데운 술은 기분도 노곤해지게 곧잘 만들곤 했는데 오늘따라 몸이 지치는지 취기가 쉽게 오르는 느낌이었다. 손을 당신에게 잡아달라는듯이 내밀자 당신은 익숙한 듯이 제 손을 잡아주어 제가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침실까지 데려다줄 여유는 있죠? 내가 너무 혼자 오래 있지 않도록 금방 다녀와야해요.
(당신의 발이 닿는 곳이 그 어디든 함께 걷고싶다면 큰 욕심일까, 당신이 하는 것 하나하나를 알고싶다면 당신은 제게 흔쾌히 함께하자고 해줄까 이런 상념들이 목에 켜켜히 쌓여가는 것 같았다.
저를 위해 만들어진 성채, 저만을 위한 당신의 설계, 저를 안락하게 보호할 침실의 푹신한 침대. 장난이라도 치듯 손을 놓고 침대에 몸을 기대니 마치 수면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럴때 하필 낮의 고아들이 떠오르다니.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자신만 이런 사치를 누려도 되는 것일까? 질문은 또다시 목구멍 안으로, 저 깊은 속으로 취기와 함께 가라앉았다.
그리고 당신의 손 끝을 손 끝으로 건들이다 입을 맞춰달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잠에 들고 말았다. 잠에 드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만큼 당신을 더 바라보지 못하니까.)
命運@_20191001
(잠시 화연을 내려다봤다. 나의 아가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술김에 부리는 투정이 귀여워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여인이 화장하지 않은 모습을 사내에게 보이는 것이 꺼려지듯 사내 또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대부분 이런 밤에 찾아왔다. 맛있는 음식을 구하러 가면 업고 갈 것이매 귀한 보석을 가지러 가면 안고 갈 것이지만 내가 갈 곳은 온갖 비극이 요동치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화연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기에 잠에 빠진 아내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끌어안고 탈의를 도왔다.
가벼운 속옷만 입힌 채로 이불을 깊게 덮어주고 발까지 주물러준 뒤에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늙은 집사는 아주 간혹 야밤에 행해지는 주인나리의 산책에 익숙한지 이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것을 성의없게 듣고는 천천히 거리로 향했다. 경성 도입, 작은 다리가 있는 강가에는 온갖 거지들이 모여 살곤 하였는데 뱀은 그곳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호시노 아카시. 뱀처럼 웃으며 무도회장으로 향하자 한 사내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았다. 잠시 눈을 감고 페도라를 고쳐 쓰자 그것의 머릿속이 읽혔는데, 저것이 부인회에 있는 정 부인의 남편이었다.
아내가 부인회에 어울려 다닌다고 자리를 비웠는데, 저녁에 표 부인과 그 이복 오라비와 마주한 모양이다. 그러니 당연스레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인데, 눈을 끔뻑였다. 정 부인은 커튼 뒤에 정부와 있구나.
그리하여 뱀은 남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한심한 남자야, 붉은 커튼 뒤에서 다른 장부를 부군으로 삼는 네 아내를 정녕 모르겠느냐. 남자의 얼굴이 벌게지며 커튼을 열어젖히니, 정 부인과 그의 정부가 비명을 지르고 사람들이 요란을 떨었다.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래! 아내를 사랑하기로는 부인회 안에서도 유명한 애처가의 고함과 찢어지는 사람들의 고함. 아, 달콤한 비극이여. 허기가 채워진다.)
花然@_____justdream
(밤은 늘 그렇게 당신 없이는 친절하지 않았다. 요며칠 아픈탓에 더 예민하여 당신의 손 끝이 제 손 끝을 떠나는 것이야 아주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마라는 놈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려는듯 잠에서 쉬이 저를 놓아주지 않았다.
겨울이 끝났다지만 서늘한 바람에 움츠러 드는 저를 위해 새로 튼 솜 이불은 몸에 무겁게 내리 앉아 자리를 차지했으며 당신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끌어 덮으니 이불로 만든 고치처럼 보이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수마에 의해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간 꿈 속에는 제가 좋아하는 라벤더 밭 한가득 꽃이 피어져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오늘 낮과 같이 당신과 함께 걸어다니며 꽃을 꺾어 당신의 부토니에를 만들어주고 제 부케를 만들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리니 맑은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새까만 먹구름이 가득 하늘을 채우고 비가 내릴 것 같아요. 라고 당신에게 말하려는 찰나 손 끝에서 당신이 사라진다. 아윈, 장난치지 말아요. 어디로 간거에요.
실제로는 입 밖으로 소리도 내지 못한채로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마냥 입만 벙긋거리며 당신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이불을 그러안고 고치처럼 잠들었던 탓에 이불이 놓아줄리가 만무하니 악몽 속에서 저는 조금 더 무력해진다.)
命運@_20191001
(돌아온 것은 새벽녘이었다. 시커먼 타르 같은 것들을 묻힌 채로 느리게 걸어왔다. 질질 흐르는 그림자가 제 주인에게로 뛰어가 몸과 융합했고, 줄줄 흐르는 어둠은 그림자도 되지 못한 채 사라지다가 다시 들러붙길 반복했다.
마침내 침실까지 갔을 때, 그 앞에서 십 분을 기다렸다.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이 완벽한 화연의 아윈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문 안쪽에서 화연의 소리가 난다. 악몽을 꾸는 것인가?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그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포식을 하면 이것이 문제였다.
배가 부르니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예민함이 조금 무뎌졌다. 화연을 위해서는 언제든 완벽히 배가 부른 상태로는 있으면 안 되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피 냄새가 나는 재킷을 벗고, 조끼만 입은 채로 화연의 옆에 앉았다.
악몽을 꾸고 있다. 잠시 깨울까 고민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왕이면 계속 재우는 것이 낫겠다. 그렇게 판단하고는 화연의 옆에 비스듬히 누워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비야, 나의 나비야. 네 어디를 가든 내가 네 곁을 따를 텐데 어찌 그리 나를 기다리니. 나비야, 나의 나비야. 멀리 날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까지 가려무나.
어디선가 들은 엔카였는데, 님을 향해 부르는 그 색기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이 노래를 부른 것은 여성 가수였기에 저는 그만한 색기를 가지고 오지 못했지만. 고개를 숙여 화연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늘 악몽을 꿔. 네 눈앞에 나타나는 나를 기다리도록.
花然@_____justdream
(눈썹사이를 찡그리며 무어라 웅얼거렸던 것은 당신의 흥얼거리는 노래에 일순 멎었다. 아마 깨어있었더라면 무슨 노래인지 더 들려달라며 갖은 애교를 부렸겠지만 악몽에 젖어 그 물기가 채 마르지 않고 겨우 진정한 상태의 화연은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당신이 제 손을 잡아주어 확실하게 돌아왔음을 알려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것은 모두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몸짓이었는데 악몽을 꾸고 당신이 제 곁에 자리할때면 이가 당신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인지 팔을 뻗어 끌어안고 당신의 체향 -무결할 정도로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향이기도 하였고 진한 녹음의 향이기도 하였다.- 을 맡고서야 아이의 칭얼거림 같기도하고 괴로운듯한 신음같기도 한 소릴 멈출 수 있었다.
꿈은 당신의 말에 사라지고 흩어져서 이내 고른 숨을 내쉬면서 다시 잔잔한 수면에 빠져들었다. 악몽을 꾼 탓인지 흘린 식은땀이 다시 차게 식으며 몸이 움츠러든다.)
好冷啊... 阿运. 在哪里...
(고국의 언어로 춥다며 당신이 어디있느냐며 이번는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당신 품으로 마치 비 맞은 새끼 고양이마냥 파고들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웃는 것이었다.)
命運@_20191001
좋은 아침.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여명을 보내고 햇살이 뜨는 것을 바라봤다. 몸을 숙여 입을 맞춰주곤 화연을 제 위로 끌고 왔다. 이불을 바꿔야 할 때가 왔는가, 생각하며 화연의 몸을 토닥였다.
가벼운 옷만 입은 아내는 유독 그 체온이 뜨거웠는데, 이제 슬슬 이 무거운 이불을 넣어두고 가벼운 이불을 꺼내어 화연이 잠자리에 들기 편하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늘 화연과 마작을 두는 사이에 사용인들을 시켜 이불을 바꾸고 환기를 하라고 명령해야겠다. 환기는 이불을 치운 뒤 삼십 분만. 더 하다간 꽃가루가 들어와 화연이 간지러워할지도 모르니까. 등을 쓸어주고 온 얼굴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가볍게 이마를 맞댄 채 화연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처를 두고 저녁 나들이를 갔더니 이것 참, 아내가 보고 싶어 미칠 노릇이더군. 그래서 들어오곤 곧바로 화연이를 보러 들어와 지금껏 손도 씻지 못했어.
(과장되게 말했지만 진실이었다. 화연이 그리워 어쩔 수가 없었다. 악몽 속에서 헤매다가 제 손길과 목소리에 편안한 잠을 이루는 화연의 모습은 마치 꽃봉오리가 꽃을 틔우는 것처럼 신기한 구석이 있었다.
그 모습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만약 네가 천 년간 잠이 든다면 나는 천 년 내내 네 옆에 앉아 네 모습을 바라보겠구나. 뱀에게도 천 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을 몽땅 화연에게 할애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화연을 바라만 보는 것에 그 시간을 모두 쏟는다고 하면 그 시간이 더욱 짧아질 것이다. 천 년 뒤에 화연이 깨어나 아윈, 하고 잠결에 웃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황홀하겠지. 잠깐 몸을 일으켜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따라 가지고 왔다.)
물부터 드시죠, 부인.
花然@_____justdream
(제 얼굴에 연신 입을 맞춰주는 당신의 행동에 코가 간질거릴 것처럼 행복했다. 자신이 악몽을 꿨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하다. 식은땀에 젖어 머리가 약간 젖어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밤새 악몽에서 헤매다가 당신을 찾아 꿈에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의지하여 몸을 일으키고 잔을 받아 몇 모금 마시고나니 조금 정신이 드는 것도 같다. 당신이 없는새 악몽에 시달리어 잠이 부족하니 두통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안개 속에 빠졌다가 돌아오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그 감각은 깨고나서도 기분이 나빴다.)
또 기억 안나는 악몽을 꿨어요. 도대체 꿈을 꾸고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괴로웠다는 느낌만 남아있는 꿈이 몇번째인지 모르겠어요. 이러다간 수면부족의 이유로 쓰러지겠어요 정말.
(투덜거리듯 종알대다가 눈 앞의 당신이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다는게 의식에 잡혀서 저도 모르게 아하하. 작게 웃음이 나왔다. 별 것두 아닌걸 뭘 그리 심각하게 들어요.
제 부군의 뛰어난 미모는 신기하기도 하지, 얼굴만 봐도 기분이 나아지고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가끔 그의 웃음을 두고 섬뜩하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저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필시 미남자를 질투하는 것이리라. 엄지 손 끝으로 당신의 입술을 쓸다가 화장대 옆의 선물상자가 눈에 띄었다.)
..아. 어제 원래 정말 주려했던 선물은 저 상자에 담긴 회중시계인데 당신 선물에 들떠서 못 줬네요. 마실을 나갈때 저 회중시계가 나침반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당신이 돌아올 시간을 놓치지 않게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문을 한거니까요.
마음에 들지 모르겠어요. 당신이라면 다 마음에 든다고 할 것 같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다시 주문을 해버리면 되니 꼭 제대로 말해주어야 해요?
(백금으로 만들어진 회중시계에는 순금으로 수선화가 장식 돼 있고 회중시계를 열면 뚜껑쪽에는 자신의 사진이, 반대쪽에는 시간을 가르키는 숫자 대신 푸른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그 시계는 더욱더 특별해지는데, 빛이 닿지 않으면 붉은색을 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저주받은 다이아몬드라 하였던가, 그런것은 믿지 않으니 오로지 아름다운 모습에 홀려 주문하였으나 어쩌면 최근래의 악몽이 저 보석의 탓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다.
주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다이아라던데.. 아니다. 그런것은 모두 미신이니 믿을 것이 못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당신에게 선물하는 것만 생각하자며 고개를 작게 도리질했다.)

命運@_20191001
(아무런 말도 없이 회중시계를 받아들었다. 백금으로 만들어진 시계는 고풍스러운 멋을 띄우고 있었는데, 생귀가 붙어 있었다. 얼마 전부터 화연이 악몽을 자주 꾼다, 싶었더니 이것에 묻어난 것이 원흉인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걸 만든 장인은 자신이 만든 뛰어난 역작을 잊지 못해 생귀가 되어 시계에 들러붙어 있던 모양이었다. 가볍게 생귀를 털어 발치에 떨어진 그림자를 밟아 터뜨리며 웃었다.
그리곤 시계를 열었는데, 과연 장인이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푸른 다이아가 숫자 대신 시계 침의 끄트머리에 닿아 있었으며, 이것에 묻어난 원념도 어마어마했다. 내 부인께서는 정말 독특한 것을 가지고 왔군.
인간의 미추란 본디 뱀에게 닿지 않는 법이었다. 화연이 곱다고 말하면 그것이 고운 것이었고, 화연이 보기 좋지 않다 말한다면 그것은 보기 좋은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게 뱀의 기준이었다.
그러니 화연이 준 이것이 어찌 곱지 않을 수 있으랴? 시계에 소중하게 입을 맞췄다. 다이아 속 원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게 느껴졌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이런 것들은 아름다움에 취한 인간들의 불행을 가지고 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뱀은 그런 불행에서 빗겨나가는 데에 재주가 있었다. 재주인가? 본인 스스로가 불행이니 문제가 없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또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화연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화연은 실제로 볼 때에 가장 아름다웠으나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는 것도 좋았다. 화연을 보지 못해 그리울 때가 온다면 이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도 좋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나의 화연. 사진에 입을 맞추는 대신 화연을 끌어안아 그 얼굴에 입을 맞췄다.)
사진보다는 이렇게 내 아내에게 직접 입을 맞추는 게 내게는 더 좋을 것 같아.
(만족스럽게 말하며 시계를 정장 조끼에 연결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빼서 시계를 열어봤다. 작금의 사내들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꾸미곤 했다.
보통 그들이 가진 시계는 검은색이나 갈색이었는데, 이런 백금의 시계는 어디를 가도 눈에 띌 것이다. 그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어때. 괜찮아? 표 부인의 이복 오라비보다 훨씬 멋있나?
花然@_____justdream
(푸른 다이아에 어마어마한 원귀들이 붙는 것은 아름다운 것에 홀린 인간이 그것을 차지하고자 갖은 술수를 부리며 서로를 해하고 죽이기 때문이리라 그 아름다움을 위해 억울하게 죽은이는 몇백일 것이고 또 저주가 구체화되어 희생당한 이는 몇천일까.
제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계 속 사진을 보며 웃곤 제게 입맞추는 당신신에 저도 화답하듯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잊고있었던 이름이 나오자 표정이 가히 볼만하게 일그러졌다.)
그 사내와 비교할걸 해야죠! 술대신 기름을 병으로 마시는 것처럼 느물거리고 채신머리 없이 여인이라면 다 좋다구 꼬리를 흔들어대는 것 같은 작자를 어딜 당신이랑 비교하겠어요!
(내 누이에게 이런 친구가 있었는줄 몰랐는데-라며 악수를 하고 끈적하게 제 손등에 입을 맞추던 그 때를 생각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만 같았다.
정말 그런 타입과 저는 상극이었는데 이는 상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추가적인 해석은 하지 않고 호의는 호의로만 받아들이는 성정 탓이었다. 그래도 그 사내는 너무 대놓고 여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녀서 저도 기피할 정도라 다행이라 해야할까.)
세상에 당신만큼 보기에 잘생긴 이가 없을텐데 무얼 걱정하는거에요.
命運@_20191001
걱정할 수밖에 없지. 그도 그럴 것이, 화연이는 이리 아름다운 미인이 아니야. 내 아내가 이리 아름다운 데다가 선하기까지 하니, 누구이든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한데 내 아내가 바깥에 나들이를 다니니 내가 없을 때에 어느 사내가 어떻게 말을 걸지 어찌 아느냔 말이야.
(웃음을 지으며 화연을 안고 몇 번이나 몸을 흔들었다. 그러다 이내 얇은 로브를 들고 와 화연에게 입혔다. 속에 입는 얇은 슬립만 입힌 채 재운 게 영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술에 취해 씻지도 않고 잤으니 오늘은 아침 식사를 하고 목욕을 시켜야겠다.
그리 다짐하고는 화연을 데리고 침실을 빠져나갔다. 일 층은 이미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사용인 하나가 아침부터 사이가 좋은 주인 내외를 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설렁설렁 걸어 식탁으로 향했다.
어제와는 달리 뜨거운 콩국과 가벼운 국수만이 단출하게 식탁에 자리했다. 화연이 나고 자란 곳에서는 아침에 죽이나 국수를 먹는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아침 식사를 그녀에게 맞추어 바꿨는데, 생각보다 보기 좋은 일이었다.
자신은 입맛에 호불호가 없으니 무엇이든 아내에게 맞추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남들이 보면 유난이라고 하겠지만서두 이렇게 하나를 해 주면 무척 좋아하니 그 즐거움이 남들보다 배는 컸다.)
花然@_____justdream
아이참, 나야 좋지만서두. 그건 너무 콩깍지같은데요 잘생긴 신사분.
(장난치듯 끌어안고 저를 흔들자 웃음이 꺄르르하고 터져나왔다. 자유를 사랑하니 저는 당신이 어떤 큰 새장을 만들어 준다고 한들 그 밖에 나가고 싶어하여 말썽을 부릴테지만 제 부군은 그것 하나 모르는 이가 아니었다.
가두는 것은 싫으나 당신이 수고스럽더라도 수족을 부려 감시를 하는 것은 오히려 든든하다고 생각하는 저인지라 그것을 잘 아는 당신은 가두고 속상하게 하는 그런 데에 심력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제 남편에게라면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말해주어 부러 감시를 심하게 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은 당신에 의해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시대의 못난 남편들이란 차고 넘쳐서 제 부인을 물건다루듯 하거나 집에서 일하는 식모 취급을 하는 자들도 넘쳤으니까, 물론 제 남편들에게 그런 이들에 대해서 말한다면 사내도 아니라고 할테지.
식탁으로 가는 복도에서 만난 사용인에게 만두피와 속 재료를 장을 봐오라고 일러주고 앉아보니 제가 좋아하는 아침식사였다. 간단하게 장에 비비듯해서 먹는 국수에 속이 편안한 콩국이라니.
당신은 늘 이렇게 저를 깜짝 놀래키곤한다. 게다가 맛도 고향에서 먹었던 것처럼 고소하고 담백한 콩국이었다. 한모금 먹고나서 입가에 묻은 것을 냅킨으로 톡톡 닦아내며 웃었다. 어떻게 이런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도대체 이런건 언제 또 준비한거에요? 마치 집에서 먹던 것 같아요. 물론 난 아침잠이 많아서 잘 챙기지 않는다고 오라버니들한테 종종 강제로 깨워져서 자는둥 먹는둥 했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지금은 일어나긴 하니까 보면 아버지도 놀라시겠어요. 후후후.
命運@_20191001
식사를 하면 속이 더부룩한 것 같아 준비를 했지. 본디 조선인들은 쌀을 먹는 것이 가장 귀하여 흰 쌀밥을 준비했는데 언제나 속이 불편한 것 같아서.
게다가 당신 옷은 죄임이 좋고 들러붙는 옷들이 많은데, 아침부터 반 공기도 못 먹고 옷까지 입는 걸 보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아 찾아봤더니만 글쎄, 중국에서는 콩국과 국수, 아니면 죽 따위를 먹는다고 하더군. 말하지 그랬어. 그럼 준비를 했을 텐데.
(제게 인간의 음식이라곤 맛이 좋지도, 그렇다고 맛이 나쁘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따지자면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인간들이 먹기에 그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음식의 맛이 무어 필요할까? 필요한 것은 아내의 취향이었다.
화연이 잘 먹으면 그것이 좋은 음식이다. 저야 아침에 밥을 먹든 죽을 먹든 면을 먹든 별로 중요치 않았으니까. 만두를 빚을 모양인데. 마작을 배우고, 만두를 빚고. 이내 오늘의 계획을 머리로 정리하고는 제 몫으로 나온 콩국을 마셨다.)
앞으로는 죽이나 면을 내어 오라고 할 테니까 먹을 만큼만 먹어. 기분이 좋다고 많이 먹으면 안 돼. 그럼 탈이 날 테니까.
(웃으며 면을 씹어 삼켰다. 밀가루의 맛. 조선에서는 귀하기 짝이 없는 밀가루로 만든 면이었지만 아내를 위해서라면 사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당장 미츠코시 백화점 지하에는 일본과 중국, 서양 각지에서 들여온 여러 음식을 팔았는데, 아마 이것은 일본의 것일 테다. 일본인들이 철수한 뒤에는 화연이를 데리고 중국으로 가야겠구나. 그렇게 계획했다.)
아침 먹고 잠시 꽃 시장에 다녀와서 점심부터 마작을 할까? 집사가 정원에 둘 여름꽃을 고르라는데, 직접 보는 것이 낫겠어.
花然@_____justdream
좋아요. 올 여름에도 라벤더를 심으면 좋겠어요. 라일락은 충분히 즐기지도 못하고 봄이 빠르게 가버려서 아쉬워요. 프리지아도...
(제가 사랑하는 꽃들은 다 봄꽃들이라 쉽게 사라져만간다. 그래서 매 해 봄을 그다지도 기다리고 그리워하게 되는것이겠지. 잠시 상념에 잠기었다가 제 몫의 콩국만을 다 비우고 식기를 내려놓았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도 안먹었을걸요.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니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상해 여자들의 식사는 차라는 우스개 말도 있는걸요. 워낙 달라붙는 옷이 많으니....
그래도 경성은 그보단 덜한 양장 차림이 많아서 편해요. 치파오의 맵시를 내겠다며 아편과 차로만 하루 식사를 떼우는 여인들도 정말 많았거든요.
... 세상에 그나저나 나 살이 찐건 아니겠죠? 이러다간 고국에 놀러도 가지 못할텐데. 배에도 살이 붙은 것 같기도 하고.... 당신이 준다고 다 받아 먹는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꽂힌듯 손바닥으로 제 배와 옆구리를 쓸어보며 조금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보았다.)
命運@_20191001
살이 쪄?
(살이 쪘나? 제가 보기엔 그저 고와만 보였기에 가늠할 수 없었다. 요 근래에 들어 인간, 그중에서도 여인들은 유달리 살을 찌우는 것에 민감한 성질을 보였는데 그것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조금 더 옛날에는 살이 찐 것이 미인이었다. 희고 살집이 있는 여인들을 비싼 값에 첩으로 맞이하는 남자들이 많을 지경이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또 늘씬한 이들을 선호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렇게 따지면 여인들의 미는 사내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로군.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화연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살이 찌지는 않은 것 같은데. 원체 마른 체형이니 살이 오른다면 금세 알아보고 기뻐했을 것이나 뱀은 기뻐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화연은 잘 먹지를 않았다. 조선은커녕 같은 중국 여인들 중에서도 화연은 적게 먹는 편에 속할 것이 분명했다. 휴지로 입가를 닦아내고는 벌떡 일어나 화연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느리게 한 바퀴를 돌리며 몸을 매만졌는데, 확실히 살이 붙지 않았다.)
아니야, 연이. 찌지 않았어. 네가 쪘다면 분명히 내가 먼저 알아보고 기뻐했을 텐데 나는 기뻐한 기억이 없어. 역시 팔뚝이 가늘고 허벅지가 얇아. 봐, 허리를 내 한 손으로도 안을 수 있는걸.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옛 중국의 어느 황후는 그 몸이 몹시 가벼워 황제의 손바닥에서 춤을 췄다고 하던데, 화연은 딱 그 정도로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
花然@_____justdream
(사용인들은 이 상황이 익숙한듯 주인내외에게는 시선을 두지도 않고 분주히 자리를 정돈했다. 일 잘하는 하인의 덕목으로는 주인이 부르지 않을때 가구처럼 있는듯 없는듯 하는 것이란 말도 있었으니 그렇게 따지면 이 집의 사용인들은 우수한 재원들임이 분명했을것이다.
당신의 장담하는 말에도 조금 울쌍이 된 표정으로 하지만 전에 정부인은 살이 조금 찐 것 같아 보기 좋다고 했는걸요. 라고 말하면서 한껏 가련한 표정으로 당신 품에 안겼다.)
살이 쪄서 관리도 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곡기를 끊고 침실에서 나오지 않으며 아무도 만나지 않는게 나아요. 분명 추할테니까. 그리고 당신은 오히려 기뻐하여 말을 안해주었을 것이 자명한데...
앞으로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치수를 재도록 해야 안심이 되겠어요. 어디고 그 잘생긴 사내의 부인이 뚱뚱하던데, 남편이 도량이 넓은가보다-는 둥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命運@_20191001
그렇다면 그건 살이 찐 게 아니라 정 부인을 보기 전날 술을 마셔서 붓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 정 부인 하니까 생각났군. 곧 상을 치를 테니 연이도 상복을 꺼내야겠어. 어제 정 부인이 죽었거든.
(툭, 단출한 말을 뱉어냈다. 비극을 탐미하는 것에는 모두 누군가의 죽음과 연결이 되어 있다.뱀이 비극의 냄새를 맡으며 걸어가는 데에는 늘 그런 일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저는 거기서 배불리 포식을 하면 그만이다. 딱히 아내를 향한 원념도 아닌데, 숨길 필요는 없었다. 화연은 연약한 듯 품에 안겼으나 의외로 또 타인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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