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운은 본디 자식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식이라는 것은 그냥 부모를 닮은 또 다른 생명체 정도로 인식을 했으니. 아니 오히려 부모가 원본이라면 자식은 아류작 쯔음 되는 것인가, 하는 막연한 추측뿐이었다. 그것에 대해서 갖는 애착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화연이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할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결혼한 지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화연이 아이들에게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도 막연히 상냥하니까 어린것들에게 눈이 가겠지 싶었다. 어린것들이 자라기에 좋은 시대가 아니니까.

 

"당신을 닮은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자아이면 좋겠다. 아윈을 닮으면 분명 아름다운 미인으로 자랄 거에요."

"아이가 갖고 싶어?"

 

어슴푸레 해가 드는 새벽녘에 잠이 없는 화연이 일어나서 명운과 모닝 키스로 아침 인사를 하고 꺼낸 첫마디는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난감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 누구에게도 네 애정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만 화연을 만나고 질투라는 감정을 알게 됐다. 자식을 갖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인간 거죽을 뒤집어써서 인간의 생식기능도 제대로 작동했으니. 하지만 필멸의 삶을 사는 인간인 화연이 죽고 나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 거지? 화연이 아니라면 자식도 명운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산고가 극심하다지. 제 정인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요. 이대로도 괜찮으니까."

 

프러포즈를 할 때 들었듯이 제 남편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생길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이끌어냈다. 오랜 고심 끝에 내뱉은 말이었다. 조르고 싶지 않았고 당혹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 지나가듯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잠깐이지만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래 함께 지낸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으니까. 내뱉은 말을 수습하려 웃으며 명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웃었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바라는 것은 어쩐지 쓴 약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누구에요?"

"3일 전쯤에 아이 부모가 죽었다더군. 거리에서 객사할 것 같아서 데려왔어."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달이 채 못 지났을까. 명운이 고아라면서 데려온 여자 아이는 신기할 정도로 화연을 빼다 박았다. 꼭 자신이 낳기라도 한 아이처럼. 그럼에도 눈빛은 한명운을 닮아서 정말 둘의 아이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3일이나 보살핌을 못 받았다면서 몰골은 꽤 멀쩡했다. 하지만 그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화연은 한명운의 선함을 믿기 때문이다. 비극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긴 해도 인간들에게 직접 해를 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와 함께했던 친우들의 불의의 사고 앞에서 그는 한 번도 애도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물론 그 애도의 눈물들이 악어의 눈물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그래서 그가 하는 말에 거짓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말이 설령 거짓이더라도 제가 싫어할만한 행동은 아니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인간의 생은 참으로 유한했다. 물론 그렇기에 비극이란 무대 위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스러지는 것이지만.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결국 곁에 두고 싶은 인간은 한명운에겐 송화연밖엔 없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연. 그런 화연에게 고통을 겪게 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갖게 해 줄 방법은 두 가지였다. 고아를 데려오거나 영물을 데려다가 인간으로 둔갑시키는 것. 물론 한명운은 앞의 방법은 선택지에 넣어보지도 않고 제가 주로 기거하던 산의 까마귀 영물을 데려다가 둔갑시켰다.

 

백여 년을 조금 더 살았을까 싶은 어린것이니 인간으로 둔갑시켜도 그리 위화감이 들지 않으리라 한 선택이었고 물론 화연의 죽음도 무의식 중에 계산한 것이었다. 화연이 죽으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고 아비의 흉내를 내려면 퍽 귀찮겠지. 하지만 영물은 달랐다. 죽음 후에 둔갑을 풀고 다시 원래 자리로 보내거나 죽이면 끝이니 한명운이 영물 쪽을 둔갑시키기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화연의 사진을 가지고 가서 수십 번을 마음에 들도록 뜯어고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닮되 같지 않게, 그러면서도 화연이 아이를 보고 애착이 생기도록 자신을 닮은 구석을 하나정도는 만들어야했다. 멍청한 새대가리라 그런지 옆에서 교정을 봐줘도 수십번을 둔갑하고 나서야 겨우 화연을 아주 닮고 자신의 모습은 자세히 보고서야 알 수 있도록 의태할 수 있었다. 그것에게 너는 부모가 죽은 지 3일은 된 아이이며, 화연에게 날을 세우지 말 것, 친근하게 굴 것 등의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주는데 한 달이 채 못 걸렸다. 꽤나 빠른 학습력이었지만 그동안 아이가 지나갈 때마다 화연이 아이를 향해 무심코 시선을 주는 것을 모른척하기가 힘들었기에 그것이 멍청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안녕. 이름이 어떻게 되니?"

"… 부모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그 현장을 봐서 그런지 기억이 온전치 못하더라고."

 

예닐곱 살은 된 아이가 이름이 없을 리가 없었는데, 이건 명명백백히 한명운의 실수였다. 외모만 닮게 만드는 것에 급급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도 생각하지 못하다니. 그것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명운의 뒤로 숨어버렸다. 그것도 명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허튼소리를 하는 것보단 명운이 수습을 하는 게 나았다. 원래도 정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그것의 불우한 사정에 곧바로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아이에게 사과를 건넸다.

 

"네가 이렇게 와줘서 우리의 기쁨이 됐으니 재희(在喜)라는 이름은 어떨까. 한재희(韓在喜)."

 

그러곤 다가와서 그것에게 손에 단 것을 쥐어주고 붙임성 좋게 웃으며 이름을 내어줬다. 여름의 햇살 같은 웃음은 볼 때마다 제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했다. 저 빛 아래에서 제가 살 수 없음을 알면서 사랑하게 하는 미소였다. 그것의 삶에 기쁨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덫붙히며 말하는 화연의 애정이 그것에게도 갈 것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없던 일인 셈 치고 싶은 감정이 스멀스멀 들었다.

 

그것은 혼란스러웠다. 뱀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연상시키는 존재는 갑자기 제가 기거하던 산에 와서 사진을 보여주곤 그를 닮은 모습으로 둔갑하기를 수십 번 시키고 이해하지 못할 규칙들을 한 달여 동안 강압적으로 가르치더니 사진 속의 사람인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 앞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곤 고아라고. 기가 찬 소리였다. 제 가족이라 할 것은 이미 진작 필멸의 운명을 타고나서 죽었으니 고아라고 해도 틀린 소리는 아니었지만 고아라는 단어는 거북했다. 그도그럴 것이 자신은 멸을 초월한 것이니까 그들과 같은 선상에 두면 안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자신은 수 백년은 산 뱀 앞에선 미물이고 약자였으니 순순히 뱀이 원하는대로 행세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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